근래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만화를 짠한 마음으로 보았다.
"무슨 소중한 기억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을까요?"
단편의 만화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무슨 소중한 기억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을까?

철없이 살다 80년대 대학을 진학하며 세상에 대해 눈뜨게 되고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남북대학생회담 참가를 위해 연세대로 모이던 대학생들을 경찰이 폭력연행하고 있다. 1988.8.15(한겨레) 사진:범민련 20년사 사진편


범민련 20년사 사진첩을 펼쳐보며 20여 년 전 나의 흔적을 발견했다. 한겨레 신문사에서 제공한 1988년 8월 15일 사진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8월 14일의 사진으로 보인다. 8월 15일은 통선대는 인간사슬로 서로 꽁꽁 묶었었다.

88년 제1기 통일선봉대를 하였다. 8월 14일 교문 사수 투쟁을 하다 지랄탄을 쏘며 교문 진입을 하는 백골단에 붙잡혀 오뉴월 개 맞듯이 얻어터졌다. 사진의 머리채를 잡힌 학생이 그때의 나를 닮았다.
닭장차에 처박혔을 때 안경은 어디론가 달아나 있었고, 마스크에는 진득한 액체 범벅이었다.
서부서에 도착하고서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욱신거렸다.
서부서가 너무 붐벼 영등포 경찰서로 옮겨졌고, 하룻밤을 자고 훈방되었다.
우리 일행이 훈방될 즈음 옆에서는 조서 꾸미는 소리가 높았다. 8월 15일 인간사슬을 한 통일선봉대가 잡혀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88년 대학 2학년의 기억이다.

▲ 평양축전 성사 '백만학도 결의대회' 참가를 위해 경찰의 봉쇄를 뚫고 한양대 입성. '환상의 진입' 1989.6.28. 사진 : 범민련 20년사 사진편


89년에는 단과대 학생회장을 했다. 3월부터 기소중지로 수배자가 되어 학교생활을 했었다.
그해 봄 학자투를 하며 방황을 많이 했었고,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6월 방학이 시작되었다. 집에는 혼자 여행을 가겠다며 약간의 용돈을 얻어 배낭을 쌌다.

그런데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결국, 발길이 닿은 곳이 평양청년학생축천 결의대회가 열리는 한양대다.
한양대 캠프에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밤을 보냈다.
학교 동료들 보다 며칠 앞서 올라왔기에 끈 떨어진 내가 미운 오리새끼로 여겨졌다.
빈둥빈둥 있을 수 없어 교문사수 투쟁에도 끼였지만 소속이 불분명한 나는 이방인이었다.

▲ 임수경 대표의 기자회견과 판문점을 통한 귀환(1989) 사진 : 범민련 20년사 사진편


며칠 뒤 학교 선후배 동기들이 도착하고서야 이방인 신세에서 벗어났다.
어둠 속 낯선 곳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나의 방황은 정리되었다.
89년 한양대 평축 투쟁에서 전철역을 사수하는 책임을 맡았었다.

경찰의 한양대 침탈이 있었던 날 침탈 소식을 늦게 접하였고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경찰에 붙잡혔다.
수배 중이라 구속을 생각했는데 그 당시 잡힌 학생들이 너무나 많아 제대로 신원조회가 이루어 지지 않았고 즉심 재판을 받고 풀려났었다.

89년에 대한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통일의 꽃 임수경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기억은 시간이 흐른다고 결코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 2011년 새해 첫날 국민의명령 봉하마을 민란에서 통일의꽃 임수경과 함께


2011년 1월 1일 새해 첫 민란이 봉하마을에서 있었다.
한명숙 총리를 비롯하여 유명 인사를 보았고 악수하였다. 그리고 통일의 꽃 임수경도 만났다.
다른 사람과는 사진을 함께 찍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통일의 꽃 임수경과는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는 첫 대면이다. 트위터에서 맞팔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나를 모른다.
그럼에도,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영원히 지우지 못할 89년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기억을 많이 만들어 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삶을 규정지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은 청년 시절의 기억을 우선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Posted by 구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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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괴나리봇짐 2011.01.05 0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임수경씨의 얼굴이 낯선 이유는??? 쌍커풀 수술을 하셨나요?^^
    아무튼 한 번 시대를 풍미했더랬죠. 최고의 장면을 가능케 했던 인물..
    여전히 그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근데 구르다님도 웹툰을 에지간히 좋아하시나 봐요? 당모순을 다 보셨다니.^^

    • BlogIcon 구르다 2011.01.05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쌍커풀 수술 했는지 물어볼까요^^

      웹툰을 보지 않는데 우연히 강풀의 당모순을 봤습니다.
      한편을 보고나니 궁금해서 모두 보게되더군요.
      지난해 마을도서관에서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한마을한책읽기 선정도서로 하다보니 챙겨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2. BlogIcon 이윤기 2011.01.05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날, 평양 도착 방송을 듣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저는 얼굴보다도 평양 도착 성명을 읽던 그 목소리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합니다.

  3. BlogIcon 커서 2011.01.05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하마을 갔다 한번인가 봤는데 아는 척은 못하고... 그냥 사진만 찍고 도망가고...

  4. 지나가다~ 2011.01.06 0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봉하마을에서 임수경을 몇번 보았어요~
    임수경이 북한 넘어갔을 때 전 고2였던가 그랬는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노통 가셨을 때 임수경이 조문와서 무릎을 꿇고 망연자실하던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었는데,
    알고보니 아들을 여윈 임수경이 해인사에 칩거하고 있었을 적에
    노통이 해인사에 방문하여 임수경을 따로이 비공식적으로 찾아
    권 여사님과 함께 '위로'했다고 들었어요.
    그 마음씀이 등등 기타 여러가지로 지지한다고 하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요새는 내내 봉하에 일 있을 적마다 봉하마을 꼭 내려와서 아프리카 실시간 방송하더라구요.
    반갑고 고마운 사람..
    생생합니다.
    포승줄에 묶여 가면서도 철장을 바라보던 심연한 눈빛,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 외치던
    의기양양했던 젊은 날의 임수경이.
    우리는 그런 눈빛, 그 마음을 다 어디다 두고 살고 있을까요?.........

    방금 서프에서 이런 글 봤어요.
    소, 돼지도 참 살기 힘든 세상이다, 라고.

    -소장님, 저예요~~잘 읽고 나갑니다^^.-

    • BlogIcon 구르다 2011.01.06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 그런 일화가 있었군요.

      임수경씨가 걸어서 넘은 길을
      노무현 대통령도 걸어서 넘으셨지요.

      그런 것에서는 임수경씨가 노대통령의 선배가 되는군요.

  5. 쉬모네 2011.02.22 1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르다님에게 진심으로 여쭈어보고 싶은 매우 심각한 질문이 있습니다.

    저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대한민국 체제를 모조리 파괴하여 이스라엘식 국가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체제운동을 전개하는 극우파입니다. 아직까지는 이스라엘 국가체제의 우월함을 선전하여 대한민국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합법공작(PR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매우 불편한 질문이지만...,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서 기본적인 상식을 바탕으로 질문하고자 합니다.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사태를 지켜보면서, 만약에 북한에서 매우 끔찍한 리비아식 체제전복사태가 일어나면, 인민공화국 체제를 전복한 대다수의 북한 민중의 시각에서는 임수경씨와 구르다님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님의 선택은 과연 역사 앞에 옳았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역사의 죄인으로 배척받아도 그래도 님의 통일론이 옳았다고 외치겠습니까? 다소 비꼬는 듯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매우 심각한 문제인지라 어렵게나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 전문가 란코프 교수와 주성하 기자, 탈북한 북한 외교관과 탈북한 북한 과학자의 글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말하자면, 불행하게도 대다수의 북한인들은 임수경과 구르다님을 비롯한 통일론자를 매우 적대적으로 여길 것입니다. 북한 문제에 접근하는 길이 매우 부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이지요.1989년의 평양에서의 일들은 일시적인 호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치하에서 가난해졌기 때문이지요. 즉 통일된 나라에서는 매우 적대적인 북한인과 매우 적대적인 남한인의 여론을 바탕으로 수립한 새 정부의 새 체제에 의한 국외추방과 재산몰수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또한 남한에서도 통일론자에 대하여 매우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보수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통일에 대하여 아무런 의지도, 능력도, 대책도 없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통일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은 소비에트 연방처럼 부가가치세를 가격대비 100%로 인상하고, 이스라엘식 복지국가 체제(해외출신 귀향이민 유대인들은 어마어마한 복지혜택을 받습니다.)를 갖추고, 반체제세력은 철저하게 박멸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인데, 아시다피시 모든 국민이 이것에 무조건 반대하고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독일의 동서통일을 예로 들어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동독은 그래도 경제가 소련과 함께 1인당 GNI가 10000달러에 이르렀던 2대 공산국가였고, 서독은 동독의 부채도 모자라 홀로코스트 배상금과 동유럽 독일교포 귀환자와 외국인 강제노역 배상금 등등을 떠맡을 수가 있었고, 모든 공공복지시설의 입장료가 무료였을 정도로 외환잉여자본이 쌓여 있는 나라였죠. 게다가 동독의 정당은 그런대로 대중정당이었고, 동독 기업도 나름대로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었으며, 동독의 사회단체도 민심의 각 분야를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모든 내외 환경이 정반대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결국 이 상태로 통일하면, 어느 나라든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폭동, 반란, 테러, 시위, 강도, 강간이 널리 일어나는 소말리아 내전, 레바논 내전, 유고 내전 당시의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한반도를 동북아의 레바논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게다가 북한인은 시대에 매우 뒤진 상태이고, 북한의 모든 시설은 모두 폭파, 철거를 해야 합니다. 비전문가의 시각에서도 너무 낡아서 쓸모가 없거든요. 하루빨리 없애야 하는 부실자산일 뿐이지요. 만약에 남한 자본이 북한에 진출해도, 북한인을 채용하지 않고, 오히려 남한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백만의 남한 실업자를 채용하는 쪽으로만 전략을 수립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게다가 남한의 저임금 노동자는 북한인 때문에 불만을 터트리고, 북한의 저임금 노동자는 남한의 경제관행 때문에 불만을 터트리고, 결국 폭동, 살인, 강도가 일어날 것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리히텐슈타인처럼 1인당 GNI를 120000달러로 높여야 할 판에, 남북통일하면 당장 1인당 GNI가 1200달러로 추락한다면 어느 누가 통일론자를 환영할까요? 오히려 돌을 던지고 총을 쏘겠죠. 일본인과 중국인은 이렇게 말하겠죠. "자....몰지각한 통일론자를 떠받든 한국인들은 오늘날 못 사는 아프리카 나라가 되었다"라면서 조센징 소리를 말하면서 100위안짜리를 한국 여자들에게 뿌리겠죠. 거짓말같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뒤에 곧바로 화폐가치가 추락하면서 많은 러시아여자들이 1달러에 몸을 바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러니, 남한에서는 통일론자를 "남한인의 밥줄을 목조르는 반역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젊은이의 대다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통일을 지금이라도 실행하자고 외치겠다면, 저로서는 그렇다면 남한에서도 리비아 수준에 버금가는 무장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견해를 말할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실제로 북한 체제와 남한 체제는 대안세력이 존재하지 않지만, 둘 다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반체제폭동은 가까운 시간에 남한이나 북한이나 어느 한 곳에서 대규모로 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일으키냐 모르는 것뿐이지요.

    한 마디로 북한인 민중과 남한인 민중으로부터 "역사의 죄인"으로 규탄받고, 국외추방과 재산몰수까지 일어날 수도 있는데도 그 때의 통일론을 외치겠습니까?

    진심으로 구르다님과 임수경님께 충고하건데, 북한에서 리비아식 폭동이 일어나서 북한 체제가 전복되면, 그 때에는 모든 통일론자들의 신변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에 아마도 북한인들의 대부분은 님들을 "북한 정권의 충견"으로 여기게 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요.

    • BlogIcon 구르다 2011.04.01 0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쪽이 한쪽을 흡수하는 일방의 통일을 생각하면 님이 제시하신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정서적 공감부터 만들어 가는 연방제 통일을 하면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분단비용을 엄청나게 들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분단비용은 소비적 비용이지만, 통일비용은 생산적인 비용이 되는 것입니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6. 하은수 2011.04.03 1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수경씨 이메일에 글을 올리려는데 방법이 없네요.작가 김백리씨가 말기암으로 시간을 다투고 있다는 오마이 뉴스 기사를 읽고 급히 임수경씨를 통해 처방을 드리려는데 어떻게 전할지를 몰라 여기 저나름으로 방법을 올립니다.
    신의 인산선생이 후세를 위해 남긴 "신약"이란 책에 어떠한 불치병도 나을수있는 "오핵단"이란 약이 있습니다.이 약을 빨리 구해서 먹도록 하십시요.
    신의 김일훈선생은 가셨지만 차남 김윤세(단국대학교대체의학객원교수)희장이 인산가로 가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검색창에 인산가를 클릭하면 상세히 나옵느다.

  7. 신성미 2011.10.22 0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9일 열리는 청년콘서트 준비를 하다가... 한양대 사진이 필요했어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혹시 콘서트 관심 있으시다면 인터파크에서 청년콘서트 검색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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