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필 때 꽃바람 타고 블로그로 돌아 오겠노라 했다. 꽃 피는 것을 시샘하는 것인지, 블로그로 돌아 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인지 때아닌 강풍주의보까지 내렸다.

2011년 왕창 백수 생활을 했다. 그 백수 생활에 간간히 활동한 것이 창원시 으뜸마을만들기 심사위원이다. 나도 참여했던  활동을 모아 녹색창원21추진협의회에서 보고서를 책으로 냈다.

나도 으뜸마을만들기에 대한 바람을 담은 글 한 편을 보탯다.

오는 6월7일부터 9일까지 마산 창동을 중심으로 전국마을만들기대회가 펼쳐진다. 책이 필요한 분들은 마을만들기대회에 참여하면 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녹색창원21실천협의회가 발간한 2011년 창원으뜸마을만들기 성과보고서 


 맨얼굴로 인사하는 으뜸마을

이종은/녹색경남21추진협의회 사무처장


‘할아버지께서 소금 굽던 그곳에 아버지가 그물 놓아 숭어 잡는 날은 동네잔치를 하였다.’ 도심 갯벌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봉암갯벌과 아버지에 얽힌 아련한 추억의 한 장면이다.

아버지가 뒷개에 숭어그물 치는 날이면 가끔은 꼬마 종은이를 데리고 갔고, 꼬마는 방천에 앉아 아버지가 그물 치고 숭어 잡는 것을 구경하였다. 그렇게 그물을 놓고 기다리면 사각의 노란광주리에 숭어로 가득 찼다. 그 때가 70년 대 중후반, 냉장고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때이니 잡은 고기는 당연 마을사람들과 나누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인심 좋은 사람이었고, 보일러 수리와 수도 배관을 하는 지금도 그 인심은 여전하다.

요즘도 맘이 울적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가끔 뒷개 방천을 찾는다. 그때의 논과 갈밭에는 공장이 들어섰지만 꼬마가 앉았던 그 자리에 서서 봉암다리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훗날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추억 장소이자 고향인 셈이다.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추억 없이 떠도는 현대 도시유목민 중에서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 자위한다.

2011년은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1년의 인생방학을 선물했다. 그냥 맹탕 방학을 탱자탱자 노는 꼴이 보기 싫었는지 녹색창원21실천협의회가 추진하는 ‘창원으뜸마을만들기’ 심사위원을 하라고 한다.

▲ 내 글도 실렸다. 책 속 사진은 2007년,,,


10여년 마을에서 풀뿌리 공동체 운동을 한 경험을 나누자는 것이었다. 매일 출근을 하는 일도 아니고, 아주 가끔 서류 심사와 현장 방문으로 마을추진위원들과 이야기 나누고 경험을 주고받는 일이었다. 

꽤 넓은 창원의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관심 기울이며 지금의 마을을 객관적으로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떤 마을에서는 안타까웠고  또, 다른 어떤 마을에서는 가능성을 확인하며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지난 1년의 ‘창원으뜸마을만들기’를 냉정하게 평가하면 마을만들기에 대한 생각과 방법의 아주 작은 차이로 안타까움이 강하다.

창원의 상징은 무엇일까? 환경수도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환경이 꽤 좋은 도시가 아닌 공장도시이다. 그래서 쾌적한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창원은 자유수출지역과 기계공단으로 대한민국 고도성장의 일등공신 중의 한 도시다. 창원은 30여년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시민이 사는 도시다. 창원시민은 고향을 잃어버렸거나 고향을 떠나 온 도시유목민이지 않을까? 창원시는 도시유목민이 사는 대표적 도시일 수 있다.

창원시민은 어쩌면 도시유목민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할 수 있는 편안한 고향이 절실한 것은 아닐까? ‘창원으뜸마을만들기’는 도시유목민이 정착할 수 있는 고향을 만드는 사업이라고 정의하면 억지스러운 것일까?

1994년 10월 4일 천사의 날에 지금의 ‘(사)지역문화공동체 경남정보사회연구소’인 ‘경남도서관및 정보문화발전연구소’가 창원도서관 별관에서 창립식을 가졌다. 연구소는 정보와 지식의 주권운동을 선언하며, 마을마다 도서관을 만들자고 했고, 마을도서관을 정보와 지식만이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는 터전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자기 과제를 명확히 했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창립 17년 마을에서는 참으로 많은 실험과 도전이 있었다. 그 실험과 도전 중에 마을만들기라고 불러도 좋은 것도 꽤나 있다. 필자가 ‘창원으뜸마을만들기’ 심사위원이 된 근거이기도 하다.

마을도서관에서 서양화를 배우는 주부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인 ‘창원사랑고향만들기’ 회원들이 창원의 모습을 화폭에 그려 창원사랑고향만들기 전을 개최한 것도 오래전에 10년이 훌쩍 지나 창원의 역사가 되었다.

대원동에서는 주민참여로 ‘향기로운마을만들기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마을만들기 강좌를 열고, 마을조사를 하여 모기 없는 마을 만들기 활동을 주민과 보건소가 함께 추진하였다. 또 주민화합 한마당인 ‘은행나무 거리축제’등을 펼쳤고 마을만들기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사파동성아파트 도서관에서 시작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밑반찬을 지원하는 활동은 주민참여에 의한 사회복지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 역시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단체 결성과 확장된 활동으로 꽃 피어 지역사회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은(마을)도서관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런 활동은 2005년 창원에서 개최된 제7회 지방의제21전국대회에서 ‘작은도서관만들기 운동을 통한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 주제로 지속가능한마을 분과위원회 컨퍼런스를 개최하여 전국으로 소개되고 확산되었다.

이처럼 창원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따라할 수 없는 마을만들기 관련 보석 같은 경험과 자원이 풍부하다.


2011년 환경수도 창원 으뜸마을만들기 사업을 돌아보며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이런 이유로 생겨난 것이다.

먼저는 ‘마을만들기’와 ‘마을가꾸기’의 차이와 다름에 대해서 사업의 참여 주체들이 정확히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 추측하면 ‘으뜸마을만들기’보다 ‘환경수도’가 강조되어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시범사업을 추진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민들 사이 마을만들기사업에 대한 이견과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에서도 교훈을 찾아야 한다. 마을만들기 사업은 환경을 개선하는 것보다 주민의 마음을 모으고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2011년 사업에서 아쉬움만 있은 것은 아니다. 사업비 2백만 원으로 실천운동을 전개한 마산합포구 중앙동에서는 감동의 쓰나미가 일었다. 같은 이름의 아나바다장터를 하더라도 어떻게 하는 가에 따라 그 결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중앙동은 주민참여와 자원동원, 행정의 개입과 역할에 대한 좋은 사례이다.

2012년 창원으뜸마을만들기에 대한 바람은 딱 두 가지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마을만들기를 지속적이고 자발적으로 진행할 운동 주체를 발굴하고 키우는 학교를 열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마을의 다양한 자원을 동원하고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다. 마을만들기는 공동체를 복원하고 회복하는 일이다. 열린 행정마인드로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참여 하는가 이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으뜸마을은 맨얼굴로 서로 인사하는 마을이다. 맨얼굴이 낯설지 않고, 담장 너머로 정이 오가고, 아이가 어른에게 인사하고, 어른이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마을이 으뜸마을이다.


2012년 2월 10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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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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