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27.토.오후 정보과학고등학교


2006년부터 한마을 한책읽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진행을 한다.
2005년 제4회 책문화축제가 좌절되고, 민간의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한마을 한책읽기를 제안했고, 2006년 시도를 하게되었다.

이 날 강연회도 우여곡절이 많은 강연회였다.


강연회가 시작되기전 마을문학백일장 시상식이 있었고
교실에서 도정일 선생님과 창원의 마을도서관에 대한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한 강연회는 아니었지만 다들 진지하게 들었다.
강연회가 끝나고..다심원에서 수제비와 더불어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에 한번 더 창원을 방문하겠노라고..
2006년 국립중앙도서관과 책읽는 사회만들기가 함께 작은도서관에 대한 사업을 협력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다..
2005년 문광부와의 작은 도서관 정책테이블에 연구소가 함께한 결과물이다..


 


강연회 요지

도정일 교수님 강연,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도정일 교수님 강연을 듣지 못하신 분들을 위하여  강연요지를 간략히 올립니다(다 쓴 글을 한 번 날려 버리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ㅠㅠ). 한 시간 반 동안의 명 강의였습니다.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러나 정보가 넘쳐나면 정보가 없어진다는 말도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치있고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판단하지 않을 수는 없고 그 판단은 사유자(思惟者) 자신의 책임일 뿐이다.
 
인터넷에 나온 정보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책읽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책읽을 능력을 잃어가는 오늘의 사회(주:글을 올리고 있는 필자는 도정일 선생님께서 대학생들의 독서와 사색의 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크게 걱정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를 신문맹사회(新文盲社會)라고 할 수 있고 신우중사회(新愚衆社會)라고 부를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야만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중사회:어리석은 대중의 사회, 또는 어리석은 대중이 주도하고 지배하는 사회, 필자 주)
 
물건을 소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을 소비기계로 만드는 사회가 아닌가. 경제적 우중사회가 아닌가. 소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어디 소비기계냐"라고 반문해야 한다. 
 
경제적 번영의 목적이 무엇인가. 내 삶이 의미있고 가치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또는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위하여는 근본적 가치, 본질적 가치가 더 중요하고 그런 것은  주로 비경제적인 가치가  아니었던가.
 
요즘 근본적가치,본질적 가치는 심하게 말하면 똥값이 되는 기분이다. 가치의 전도(轉倒, 꺼꾸로 뒤집힘)를 느낀다. 아이들에게 인생을 가치있고 의미있게 살게 만드는 평화, 정의, 사랑, 이해, 나눔과 같은 것을 심어주지 못하고 아이들 머리의 두껑을 열어 지식을 부어 넣어려 하고 있다.  아이들의 성장의 자유로운 환경을 박탈하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부모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의 나중 모습이 궁금하다. 인물을 기르기는 커녕 조랑감자들을  다량 수확하게 될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예일대 교수가 말하기를 아이들의 지적 능력은 10세 이전에 모두 결정되고 그 중에서도 6세 이전에 결정된다고 하면서 책을 읽어 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의 힘을 이야기 하였다. 이 시기가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젊은 엄마들이 엉뚱하게도 어린 아이들을 학원같은 델 내 보내고 있다. 이건 아닌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접촉을 말하는 것이다.
 전에는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즘은 텔레비전, 비디오 같은 기계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해야 할까. 이런 도구들은 인간과 인간의  접촉을 차단하는 셈이 된다.  가정과 작은 공동체들이 한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이야기하고 싶다. 창원에서 해 온 이런 방향의 노력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힐러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사실 이말을 먼저 한 사람은 따로 있기도 하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온 마을이 필요하고 논두렁과 개구리 울음소리, 저녁 노을과 가을 달빛도 꼭 필요하다"고.


(차정인, 부산대 법대교수, 전 연구소 초대이사장, 독서문화상 대통령상 수상(97년), 전변호사)


지식 정보사회에는 정보 접근의 사회적 평등이 있어야 합니다.
경희대 도서관장으로 근무할 당시 일주일을 굶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앉은 사서들에게
나는 왜 여기 있는가를 하루에 세 번씩 질문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일의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며 사람과 사람사이에 필요한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보가 넘쳐나면 정보는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바다에 빠져 본 사람은 물을 싫어하기 마련입니다.
정보홍수의 사회에서는 정보의 바다에 빠지기를 두려워하고 꼭 필요한 정보만 검색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정확한 자료인지 판단의 정보가 더욱 중요합니다.

설득을 거부하는 저항 이것이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독서의 자세는 그 책의 내용을 상상하고 저자와 대화를 하며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입니다.
삶의 위기에 빠지지 않고 사막처럼 황폐화 되지 않으려면 정신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책읽기, 생각하기, 비판하기등 정신을 자극하여 마음의 양식을 쌓는 독서입니다.
또한 독서는 한 사회의 건강한 정신과 마음의 능력을 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신문맹사회, 즉 책맹, 야만사회ㅡ 암흑 사회적 형태로 나타납니다.
인간을 소비기능으로 만드는 기능으로 소비창출만 강요하기도 합니다.
소비는 창조를 낳고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 선택의 이유를 알아야 진정한 소비인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비 시장적, 비경제적 가치는 시궁창에 떨어지고
돈이 우선시 되는 가치의 전도가 된 현 시대에서 조랑밭 감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사회의 지탱의 힘은 빵과 이야기입니다.
옛날에는 서사문화의 전달자로서 할머니들께서 구수한 이야기를 해 주셨지만
현대 사회에선 사람과 사람과의 접촉, 즉 얼굴을 마주 하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기계, 인터넷이 대신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기능화 되고 모래처럼 삭막해질 때 책을 읽지 않고서는
삶의 이야기 꺼리가 없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힐러리 여사가 말하였지만
나는 논두렁의 개구리 울음소리
지는 노을의 바람소리
미친 여자의 웃음소리
가을달빛등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옥둘이님이 정리한 글/공무원교육연수원, 연구소 회원)


 


- 도정일 선생님 강연회 이후 메일..

정애라 선생,
강연회 준비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창원 분들이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고 왔습니다,
차정인 교수 부부, 이종은 소장, 임영대 위원장을 비롯해서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해주십시오. 저희 ‘책읽는사회’도 창원의 친구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조만간 다시 창원을 방문할 일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정 선생과는 그때 이런저런 얘기 나누기로 하지요.
다심원의 수제비가 참 맛 있었습니다.
5/29  도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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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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