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토에 망치소리가 들리게하라,
대통령이 건설현장에서 지휘봉을 들고 진두에서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볼 때 국민들은 감동을 느낄 것이다.

'영웅시대' 드라마를 현실에서 다시 부활을 시키겠다. 기가찰 노릇이다.
우리가 2008년을 사는 것인지 1970년 대를 사는 것인지?
전 국토를 파헤치는 것이 녹색성장인가?

창원의 끝동네, 진해,김해, 창원을 경계 짓는 불모산 아래 작은 마을이 있다.
불모산동, 80년 대 초반 보리 수확을 할 때면 중학생들이 손에 낮을 들고 보리베기 봉사를 가던 곳이다.
공씨가 많이 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원식 음악선생님은
불모산에 사는 공씨 성을 가진 친구를 볼 때면 '불모산 공가, 불모산 공가' 하곤 그랬다.



일요일 문득 불모산저수지가 보고 싶어 무작정 스쿠터를 불모산 쪽으로 몰았다.
근데 뭔가 썰렁하다..창원의 끝동네가 철거 되는 것이다.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 초등학생의 작품으로 보이는 그림액자 두개가 뒹굴고 있다.
고향이 버려지고, 추억이 버려지는 씁슬한 광경이었다.
30년간 파헤치고 콘크리트 아파트를 짓기 시작한 창원의 개발은 거의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파헤쳐질 때 마다 고향이 하나씩 사라져 간다.
서울 흑성동 주민들이 재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추가 부담이라는 경제적 이유가 작용을 한 것이지만 정말 잘 한 결정인 것 같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동네를 파헤치고 나면 결국 기존의 공동체는 해체되고 결국 좀더 경제적 능력이 되는 사람이 이윤을 찾아 이주를 하는 것이 도시재개발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아직 고향을 이야기하고, 찾아 갈 고향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고향이라는 마음의 안식처가 존재 할 수 있을까?
친구가 있고, 어릴적 추억이 가득한 곳, 힘들고 어려울 때 언제든지 달려가면 반갑게 맞아줄 수 있는 곳
그것이 고향인데...과연 그런 고향이 지금 아이들에게 주어질 수 있을 까?
고향을 가진 세대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마지막인 것 같다.

부모의 직장을 따라 이리저리 이사를 다녀야하고, 추억을 만들 시간도 없이 학교와 학원으로 쫒겨 다녀야 하는 아이들에게 고향이 있을리 없을 것 같다.



불모산동 마을 입구에 '김해김씨세거'라는 비석이 있었다. 언제부터 있은 비석인지는 모르겠다.
'김해김씨사람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다'  이런 뜻이다.
이 비석도 사라져가는 풍경이 되었다.
앞으로 저런 비를 세울 일도 없고 세울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이 겨울 다하기 전 진해에서 곱창전골집을 경영하는 불모산 공가라고 불렸던 친구집에 한번 들려야 겠다.

이 글 보시는 님들의 고향은 안녕하신지, 아이들과 어릴적 앨범을 들추어 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생각나는 친구가 있으면 어느 늦은 밤 전화 걸어 '친구야! 너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 했다' 라고 실없지만 마음 따뜻한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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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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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실비단안개 2008.12.16 1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진해시청엘 갔습니다.

    우선 중원로타리의 성탄트리가 별이 아닌 십자가였기에 궁금해서였고요, 탑산 계단에 모노레일 공사중이라 중원로타리에서 보면 산이 잘린 듯 보입니다.(시청의 답은, 몸이 불편한 시민을 위해서라고하더군요.)

    중원로타리의 트리 십자가는 기독교 단체로 떠넘기고요.
    또, 중원로타리의 벚나무에 치장한 꼬마전등에 대하여 여쭈니 서부진해가 낙후 된 느낌이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였다네요. 기가막혀 - 경기 죽은 동네에 꼬마전등을 단다고 경기가 살아난다면 온 동네 집집마다에 설치하겠다 -

    하여 우리 몸에 전선을 감아 전기를 넣으면 어떨까요? - 했습니다.
    내년에도 설치를 할거냐니까, 그건 지금 답을 줄 수 없다고 하데요.

    진해, 동부쪽은 공사로 몸살을 앓습니다. 지형이 변하고 있습니다.
    짧게 - 鎭海야 藥 먹자 - 가 어울리는 지역입니다. 보통 미친게 아니거든요.

    • BlogIcon 구르다 2008.12.16 14: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
      토건공사 공화국이라서 그렇습니다.
      진해 서부지역의 경우 문화를 주제로
      생각들을 모아보면 활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인데
      행정하는 사람들은 그게 당장 돈들어 오는 것이 아니니
      관심이 덜합니다.
      진해는 예전을 건물을 잘 보전하고 가꾸는 것도 필요한데
      허물어 버리니 문제지요..

  2. BlogIcon 林馬 2008.12.17 0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바쁘시군요^^*
    도민일보 블로그 간담회에서 못뵙게되서 서운하네요.
    담에 언제 함 봅시다.

  3. BlogIcon 무극대도 2008.12.22 14: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고향이란 개념이 딱히 박힌 세대는 아닙니다.
    그러나 알지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랐던 그 땅을요.
    그리고 지금은 삽질과 불도저같은 중장비에 사라지고 있는 자연을요..

    분명 제가 머물다 온 아파트도 30년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라고 그랬고요
    어쩌다 가뭄이 되어서 드러나는 집터는 누군가의 고향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누군가의 고향...!

    • BlogIcon 구르다 2008.12.22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대인들은 다 유목민입니다.
      예전의 유목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것이지요.

      미국에 계시는 한국이 고향으로
      좀더 범주가 넓어지겠군요..
      메리크리스마스

  4. BlogIcon 이창림 2008.12.29 1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울내기인 저는 어머니 고향인 강원도 낙산을 고향처럼 생각했었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서울로 올라오시기 전인 고등학생시절까지 방학때마다 내려가서 여름이면 바다에서 놀고 밭에서 일손 돕고, 겨울에는 산에 다니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고향이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세대를 더 할 수록 도시 어느 아파트가 고향인, 그래서 고향이 없어지게 되겠지요. 안타깝네요.

    • BlogIcon 구르다 2008.12.29 2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60년대 출생자와 80년대 출생자를 흙길세대와 아스팔트세대로 구분하던 후배가 있었죠,
      흙과 아스팔트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고향이 있고 없고가 세대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새해 건강하세요,,
      하시는 일을 보니 언제 얼굴볼 기회도 있겠군요^^

  5. BlogIcon 이창림 2008.12.30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르다보면님의 후배 구분에 따르면 저는 중간 세대 정도 되겠네요. 흙길고 아스팔트를 함께 밟아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얼굴 뵙게 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 BlogIcon 구르다 2008.12.30 1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대한민국이 그렇게 넓은 나라가 아니니
      기회가 있을 겁니다.

      김현님은 지난번 제주 웍샵에서 만났습니다.

      새해 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6. BlogIcon 실비단안개 2008.12.30 1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이 여기 시골 장날입니다.
    시장 둘러보러 가니 바람이 많네요.

    두루 따숩길 바랍니다.()

    • BlogIcon 구르다 2008.12.30 1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인데..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뭔가 일이 많이 밀린것 같은 그런 마음입니다.

      새해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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